회사에서 대시보드를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경험을 했을 것이다. 화면 한쪽에 빨간불이 켜진다. "매출 하락", "재고 부족", "이상 징후 감지". 그런데 그다음은? 우리는 다른 창을 열고, 담당자에게 메신저를 보내고, ERP에 로그인해서 직접 처리한다. 대시보드는 문제를 알려줬을 뿐,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았다.
최근 팔란티어(Palantir)라는 회사가 주목받는 이유를 파고들면서, 나는 이 회사가 던지는 질문이 의외로 단순하다는 걸 깨달았다. "데이터를 보기만 할 거냐, 아니면 그 데이터로 일을 끝낼 거냐?" 이 글은 그 질문에 대한 내 나름의 정리다. 전문 용어를 최대한 일상의 비유로 바꿔 풀어보려 한다.
1. 온톨로지, 그래프DB와 뭐가 다른가
팔란티어를 이해하려면 '온톨로지(Ontology)'라는 개념부터 넘어야 한다. 이름이 거창하지만, 핵심은 데이터를 '점과 선'으로 연결해 다룬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엑셀이나 일반 데이터베이스는 데이터를 표(행과 열)에 가둬둔다. 그래서 "김 대리가 담당하는 거래처가 관여한 미수금 건"을 찾으려면 표 여러 개를 짜맞추는 번거로운 작업을 해야 한다.
반면 그래프DB는 데이터를 점(객체)과 선(관계)으로 본다.
김대리 —(담당)→ 영업1팀 —(거래)→ A상사 —(미발생)→ 미수금 2억
이렇게 연결 자체를 저장하니 관계 탐색이 빠르고 직관적이다. 여기까지는 그래프DB와 온톨로지가 똑같다.
그런데 결정적 차이가 하나 있다. 그래프DB의 'A상사'는 그냥 이름표가 붙은 점이다. 연결만 알려줄 뿐, 그게 뭘 의미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모른다. 반면 온톨로지의 'A상사'는 객체 안에 세 가지를 품고 있다.
첫째, 도메인 지식. "A상사는 거래처이고, 거래처는 기업의 일종이며 반드시 사업자등록번호를 가진다." 사람이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시스템이 스스로 추론한다.
둘째, 비즈니스 로직. "미수금이 1억을 넘으면 신용위험 상태로 전환된다." 단순 데이터가 아니라 판단 규칙이 객체에 붙어 있다.
셋째, 행동(액션). 이 객체를 클릭하면 그 자리에서 '주문 승인', '신용한도 조정' 같은 버튼을 누를 수 있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그래프DB가 책의 위치와 연결만 표시한 지도라면, 온톨로지는 책 내용도 알고, 대출 규칙도 알고, 반납 처리까지 해주는 사서(司書) 다. 한쪽은 '구조'고, 다른 쪽은 '의미와 기능을 포함한 운영 체계'다.

파란티어 파운드리 계층 레이어 구조
2. "그럼 행동은 자동으로 되는 거야, 사람이 하는 거야?"
여기서 내가 가장 헷갈렸던 지점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온톨로지에 '행동 기능'이 있다고 하면,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이 든다.
"중요한 결정은 결국 사람이 하는 거 아닌가? 그럼 이건 그냥 사람이 판단 잘하도록 근거를 제공하는 기능 아냐? 아니면 재고가 부족하면 알아서 발주까지 해주는 거야?"
답은 "둘 다 맞다" 이다. 그리고 핵심은 그 경계를 사람이 미리 설계해서 정한다는 점이다.
행동은 '자동이냐 수동이냐'의 이분법이 아니라 스펙트럼으로 깔린다.
완전 자동. 사소하고 되돌릴 수 있는 행동. 예를 들어 소모품 재고가 안전선 밑으로 떨어지면 시스템이 알아서 발주 요청을 생성한다. 위험이 낮으니 사람이 매번 누를 필요가 없다.
반자동. 시스템이 "이 공급사에 100개 발주를 권장합니다"라는 버튼 달린 제안을 띄우고, 담당자가 검토 후 승인을 누르면 그제서야 실행된다. 의미 있는 업무 대부분이 여기에 속한다. 사람의 판단은 살아있되, 판단 근거와 실행 버튼이 한 화면에 묶여 있다.
완전 수동. 공급사 교체나 라인 중단처럼 전략적이고 되돌리기 힘든 결정. 시스템은 근거만 제공하고, 행동은 전적으로 사람의 몫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정리하면 깔끔하다. 작고 안전한 행동은 자동으로 넘기고, 중요한 행동은 사람이 결정하되 그 결정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내리도록 추론을 제공하고 실행까지 같은 자리에서 처리하게 해준다. 자동화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판단력을 정작 중요한 곳에만 남겨두는 구조다.
기존 데이터 플랫폼이 "문제가 있습니다"(빨간불)에서 멈췄다면, 팔란티어는 "원인은 이것이고, 영향 범위는 여기까지이며, 이렇게 하시길 권합니다 → [승인]"까지 한 흐름으로 끌고 간다. 추론 바로 옆에 실행 손잡이를 붙여놓은 것이 차이의 본질이다.
3. 보는 거울에서 돌아가는 톱니바퀴로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하는 건 데이터가 순환하기 때문이다.
기존 BI 도구(엑셀 대시보드, 태블로 등)는 '보기만 하는 거울'이다. 매출이 떨어진 걸 보여줄 뿐, 거울 앞에서 손짓해봐야 매출은 안 바뀐다.
팔란티어 파운드리는 '돌아가는 톱니바퀴'다. 데이터를 보고 → 그 자리에서 행동하고 → 그 행동의 결과가 다시 데이터로 돌아와 다음 판단의 재료가 된다.
재고 객체가 '부족'으로 전환 → 담당자가 발주 승인 → 발주 사실이 다시 구매·재고 데이터에 기록 → 시스템이 새 데이터로 다음 상태를 재판단
이 데이터 → 행동 → 다시 데이터 의 고리가 돌기 때문에, 이것을 '분석 툴'이 아니라 '실행형 플랫폼'이라 부른다.
4. 워크숍 — 코스 요리 대신 '한 입 시식'
파운드리의 또 다른 무기는 '워크숍(Workshop)'이라는 앱이다. 한마디로 코딩 없이 업무용 앱을 레고처럼 조립하는 도구다. 이미 만들어둔 온톨로지 객체(재고, 거래처, 주문)를 블록처럼 가져와 "이 화면엔 재고 목록, 옆엔 발주 버튼" 하는 식으로 실제 돌아가는 앱을 만든다.
이게 왜 대단한지는 기존 방식과 비교하면 분명해진다.
전통적인 시스템 구축은 '워터폴(폭포수)' 방식이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만 흐르듯 순서대로만 진행된다. 업무 흐름을 파워포인트로 정리하고 → UI를 설계하고 → 개발하고 → 몇 달 뒤 완성하면 → 그제서야 현업이 본다. 문제는 다 만들어 놓고 나서야 "이거 우리가 원한 게 아닌데"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면 처음부터 다시. 비싸고 느리다.
워크숍은 업무 단위의 최소 기능 제품(MVP)을 몇 시간에서 1~2주 안에 만든다. 완벽하진 않아도 일단 돌아가는 걸 빠르게 만들어 현업에게 보여준다. 진짜 핵심은 피드백을 받는 시점이 압도적으로 빨라진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워터폴은 손님 의견 한 번 안 묻고 풀코스를 다 차린 뒤 내놓는 것이다. 입맛에 안 맞으면 전부 버린다. 반면 워크숍은 한 입 크기로 빠르게 만들어 "이 맛 어때요?" 물어보고 바로 간을 고친다. 결국 손님 입맛에 정확히 수렴한다.
5. 내가 진짜 흥미롭게 본 지점 — '개인 행동의 온톨로지'
여기까지가 기업용 이야기다. 그런데 나는 이 개념을 보면서 전혀 다른 상상을 했다. 사람의 평소 행동을 온톨로지로 만들면 어떨까?
기업의 재고와 거래처를 객체로 다루듯, 한 사람의 하루를 객체로 다루는 것이다.
- 상황 객체: 월요일 아침, 마감 3일 전, 수면 부족 상태
- 행동 객체: 커피 3잔, 회의 미루기, SNS 30분, 즉흥 야근
- 감정 객체: 불안, 집중, 번아웃
- 결과 객체: 마감 성공, 관계 갈등, 수면 악화
그리고 이걸 연결한다.
수면부족 →(유발)→ 커피 3잔 →(악화)→ 불안 →(이어짐)→ 회의 미루기 →(초래)→ 마감 실패
이 연결이 쌓이면 그 사람만의 '행동 연쇄 패턴'이 드러난다. 거기서 규칙을 뽑을 수 있다. "이 사람은 수면 5시간 미만 + 오전 회의가 겹치면 70% 확률로 중요 결정을 미룬다." 그러면 단순히 "어제 잠 못 잤네요"가 아니라, "지금 당신이 처한 조건은 과거에 나쁜 결정으로 이어졌던 패턴과 일치합니다" 라는 코칭이 가능해진다.
현실적으로 이걸 어떻게 시작할까? 거창하게 가지 말고 영역 하나만 고르면 된다. 가령 '미루는 습관' 하나. 2~3주간 미룬 순간의 상황·수면·감정·결과를 표로 기록한다(데이터 수집은 캘린더, 워치, 스크린타임처럼 이미 폰에 있는 걸 활용하면 마찰이 적다). 패턴 서너 개를 직접 발견하고, 그걸 AI에게 맥락으로 넘긴다. "다음은 내 행동 패턴이야. 이 상황에서 조언해줘."
이게 요즘 'Knowledge Graph + LLM' 이라 불리는 방향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온톨로지는 그 사람의 검증된 패턴을 구조화된 사실로 보관하고, LLM은 그 사실을 읽어 자연스러운 코칭 언어로 풀어준다. 일반론으로 조언하는 게 아니라 "당신의 검증된 패턴에 근거해" 조언하니, 환각은 줄고 개인화는 올라간다.
기업이 재고를 관리하듯,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사결정 패턴을 관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치며
팔란티어가 보여주는 건 결국 데이터에 대한 태도의 전환이다. 데이터는 더 이상 보고 끝내는 보고서가 아니라, 보고 → 판단하고 → 행동하고 → 그 결과가 다시 데이터로 돌아오는 살아있는 흐름이다.
그리고 이 발상은 거대한 기업 시스템에만 갇혀 있지 않다. 한 사람의 일상, 한 사람의 의사결정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보는 데이터"에서 "일하는 데이터"로.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대시보드가 아니라, 행동으로 이어지는 더 똑똑한 구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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